본문바로가기 주메뉴바로가기

덕연동

지명유래

덕연동은 본래 순천군 소안면과 해촌면 지역으로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화리·구암리·생목리·율전리의 각 일부와 장평면의 상평리일부, 해촌면의 명말리·운동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덕암리라 하고,해촌면 운동리 일부를 병합 생목리라 해서 순천면에 편입되었고, 대석리·율산리·명말리·운동리·마새리·용곡리·두지리의 각 일부와 용두면의 상삼리를 병합하여 연향리라 하여 해룡면에 편입되었다. 1931년 11월 1 일 덕암리, 생목리는 순천읍에 속했으며 1949년 8월 14일 순천부 신설에 따라 해룡면 연향리는 순천부에 속했으며 1949년 8월 15일 지방자치제 시행에 따라 순천부가 순천시로 바뀌고 동제 실시에 따라 순천시 덕암동, 생목동, 연향동으로 운영하다가 1964년 1월 7일 순천시의 33개동을 16개동(행정운영동)으로 조정(시조례 제174호, 1963.12.18)하면서 덕연동이라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후 1992년 12월 3일 덕암동일부를 조곡동과 풍덕동에, 조례동 일부를 연향동에 편입 (시조례 제1592호)시켰으며, 1998년 1월 15일 덕암동일부를 조곡동과 풍덕동에, 조례동 일부를 연향동에, 생목동일부를 조곡동에, 조곡동 일부를 생목동에 각각 편입(시조례 제334 호)시켰다. 덕암동은 쌀앙등으로 불리다 덕암이라 개칭되었고, 마을터가 거북이 형상을 하고 있는 구암(덤바구) 마을과 임진왜란 당시 왜적들이 바다를 건너와 북상을 시도하다가 아군들에게 피해를 당한 지역이기도 한 신아(신화)마을이 있다.

생목동은 마을 고개에 수백 년 된 당산나무가 있는데 부목,모목,자목이 있는데, 자목이 고사 직전에 있을 때 마을 주민들이 목욕재계 하고, 정성스럽게 제사를 드리니 소생하여 그 때부터 생목이라 하였으며, 또 연향동은 마을이 처음 생겼을 때 마을 한복판에 조그마한 연못이 있었는데 그 연못에 연꽃이 많이 피어 향기가 사방으로 진동하였다고 해서 연향이라 불렀다 한다. 대추나무가 많았기 때문에 대추쟁이라고도 하고 큰 돌이 있다 하여 붙여진 대석 마을과 밤나무가 많고 옛날 한양에서 살던 선비가 낙향하여 이 마을 뒷산에 보검을 감추었다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는 율산(도장굴,밤나무골) 마을, 위쪽에 좋은 샘이 있어서 온 마을 집들이 홈대를 이어서 물을 받아먹었다고 해서 생긴 명말(홈끝) 마을이 있다.

덕연동의 면적은 순천시 전체면적의 약 0.57%인 5.15㎢이며 지역 중심부에 구릉과 철도시설이 산재해 있어 구심 도로망이 빈약하나 대단위 택지개발로 신도시가 형성되었으며 해룡면, 조곡, 풍덕, 왕조동과 접하고 있다.

2023년 2월 현재 17,893세대 42,617명이 살고 남자는 21,222명, 여자는 21,395명이다.

문화유적으로는 1821년(순조 21년)에 정지년·정승복·정사준·정사횡·정빈·정선등 경 주 정씨 일문을 봉안하는 옥계서원이 있으며 옥계서원은 1868년에 훼철당하였다가 1953년 현재의 연향동 명말마을에 복설하였고 전라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또 고려시대부터 이 지방을 수호해 주는 산신들에게 제사하는 성황 행사를 행하여 내려오 던 성황사(당골)가 있어 생목동 뒷산인 성황당산에 모셔 오다가 1895년(고종 32년)에 폐지 되었다.

QR CODE

오른쪽 QR Code 이미지를 스마트폰에 인식시키면 자동으로 이 페이지로 연결됩니다.
이 QR Code는 현재 페이지 의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현재페이지로 연결되는 QR코드

현재페이지에서 제공되는 서비스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

만족도결과보기

공공누리의 제4유형

[출처표시-비상업적-변경금지]
출처표시/비상업적 이용만 가능/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

콘텐츠 담당부서 :
덕연동
전화 :/
061-749-8284
콘텐츠 최종 수정일 : /
2024-04-16